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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 from 웅상신문's post 06/05/2026

어제, 웅상 지역 광역·기초의원 예비후보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책선거 공약 선언식(매니페스토 선언)'을 가졌습니다.

​때로는 치열하게 경쟁하겠지만 웅상 발전을 위해서라면 손 하트를 그리며 화합할 수 있는 그런 성숙한 선거 문화…

정책으로 승부하는 품격 있는 웅상을 기대해 봅니다.

​ #웅상신문 #취재수첩 #매니페스토 #정책선거 #공약검증 #웅상지역구 #화합 #끝까지취재합니다

웅상신문의 인터넷신문, 양산시와 부울경(웅상,울주 웅촌, 기장 정관)뉴스 16/0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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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2026

새로운 변화의 시작, 전해광 예비후보를 만나다

​오늘은 양산시 서창·소주 지역구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전해광 예비후보와의 인터뷰로 아침을 열었습니다. ^^

​정치라는 치열한 길에 첫발을 내디딘 전 후보님…
시의원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정치신인이 그리는 미래에 대한 열정이 웅상 지역에 어떤 기분 좋은 변화를 가져올지….

벌써부터기대됩니다.

# 전해광 후보 첫 만남 인증샷@@

01/12/2025

감포 해수욕장

Photos from 웅상신문's post 31/10/2024

[유럽 인문학여행15] 체코의 화가 알폰소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예술가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체코 여행에서 최고의 행운은 아르누보의 창시자 알폰스 무하를 만난 것이다. 레드니체 성을 떠나 모라브스크 부데요비치로 달리는 차 안에서 이기영 대표가 알폰스 무하에 대해서 뭐라고 말했지만 이름도 생소하고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그런지 창밖의 풍경에 더 눈길이 갔다.
약 2시간 정도 달려서 온 모라비아 크룸로프의 뮤지엄 캄파,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는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 와우!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전시회장 벽면 전체에는 대형 그림이 쭉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예술가로 태어나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알폰스 무하의 경우는 체코 민족의 뿌리를 담은 슬라브 대서사시였다. 체코의 국민이 자긍심을 갖는 것, 슬라브 민족들이 공동 유대감과 이상적 평화를 염원하면서 약 18년 동안 그린 슬라브 민족의 문명과 역사였다. 거대한 20~50㎡ 캔버스에 그린 슬라브 서사시는 원래의 고향에서 살고 있던 슬라브족의 조상들에서부터 종교 개혁자인 얀 후스, 얀 아모스 코메니우스, 슬라브 민족의 신성화 등이었고 역사적 맥락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다.
‘예술가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조국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알폰스 무하는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인생 후반기인 1899년 아이디어를 결성했다. 1900년 파리 전시회를 위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정부에서 의뢰해 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관의 내부를 설계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널리 발칸 반도를 여행하면서 슬라브 인의 역사, 관습 등을 관찰했다. 이러한 경험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모든 슬라브 민족의 서사시였다.
슬라브 서사시의 투자자는 알폰스 무하가 찾아 나섰다. 1904년에서 1909년 동안 약 5번에 걸쳐 미국을 방문했고 1909년 시카고의 부유한 사업가인 찰스 리처드 크레인에게서 재정지원을 받기로 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알폰스 무하는 1911년~1926년 동안 서부 보헤미아 즈비로그 성에 있는 크리스털로 된 스튜디오에서 그림에 집중했다. 그림은 모두 20개의 대형 캔버스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체코 역사의 에피소드 10개, 다른 슬라브 지방의 역사적 에피소드 10개로 구성되었다.
알폰스 무하는 슬라브 공동의 유대와 평화를 향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은 전부를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인 1928년 조국에 기증했다.
#아르누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유럽 예술사조.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의 반작용으로 자연물, 특히 꽃이나 식물 덩굴에서 영감을 받은 장식적인 곡선을 많이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템페라(달걀노른자, 벌꿀 등을 접합체로 쓴 투명 그림물감)기법을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무하는 순수한 달걀 템페라가 아닌 달걀노른자에 빻은 안료와 물, 기름 등을 적절히 섞어 사용.
(2023년 4월 13일)

Photos from 웅상신문's post 23/10/2024

[유럽 인문학여행14] 예술적 감성 듬뿍 느끼고 싶다면 체코 리토미슐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리토미슐 성과 스메타나의 리토미슐 음악축제
스메타나, ‘예술적인 사상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사람만이 완전한 인간이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약 160킬로미터 곳에 있는 리토미슐, 인구 1만 정도의 작은 도시 리토미슐은 스메타나 광장을 중심으로 리토미슐 성, 성당 등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미술적인 느낌이 듬뿍 나는 리토미슐,

세계적인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태어난 곳이고 매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약 2주간에 걸쳐 스메타나의 리토미슐 음악축제가 열린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리토미슐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색채로 만들어진 도시일 거라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스메타나 광장에 있는 즐라타 호텔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마을을 산책하면서 본 것은 고요하게 흐르는 예술적 분위기였다. 광장 옆 긴 통로의 건물 곳곳은 하루를 준비하는 상점이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눈길을 끈 것은 꽃을 파는 남자였다. 아침 햇살을 받은 장미꽃을 붉은빛을 내뿜고 통로는 더없이 평화로웠다. 광장을 지나 마을을 관통하는 강으로 향했다. 청명한 하늘과 물가에 흐드러지게 가지가 늘어뜨린 수양버들과 단아한 집이 평화롭고도 발랄했다.

마을 곳곳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마을답게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이 돋보이는 건물들을 만났다. 알록달록한 건물은 하나같이 세련되고 독특하고 여유로웠다.

아침 산책이 끝난 후 광장에서 약 500미터 동쪽에 있는 리토미슐 성에 단체 일정으로 보러 갔다. 리토미슐 성은 6월에 있는 스메타나 음악제 준비로 공사 중이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리토미슐 성은 브라티슬라프 폰 페른슈타인(Vrat백작이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초빙해 1568에 착공, 1581년에 완공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과 기술을 전적으로 도입했다. 공사로 구석구석 볼 수는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 특별한 느낌이었다.

특히 이 성의 외벽 전체는 르네상스 양식의 끝손질 디자인, 즈크라피토 기법으로 하나하나 조각으로 파낸 것이다. 벽면에 석회를 바른 다음 마르기 전에 긁어내면서 바탕색이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외관은 이 기법으로 8,000여 개가 넘는 ‘가짜 돌’로 장식되어 있고 조각마다 다른 모습으로 꽃, 식물, 사람, 과일, 신화 속 모습, 동물 등이 다채롭게 그려져 있다.

대체 스메타나 음악가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대체 누구이기에 리토미슐을 예술의 마을로 만들었나. 궁금했다. 사실 음악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는 나였다. 한때 4년 정도 피아노 교습도 하고 클래식 음악만 들은 적도 있지만 시간이 나면 음악 대신 영화를 보는 편이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보헤미아 왕국이었던 시절, 정식 음악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현악사중주에서 연주를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적으로 성장했고 일찍이 프라하로 나갔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던 보헤미아는 민중 사이에 저항 운동이 확산되고 있었다. 스메타나는 4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업을 받았고 6살 때 처음으로 공개 연주회를 하는 등 뛰어난 실력을 가졌다.

그의 나이 22세가 될 때인 1846년 리스트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피아노 연주자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1848년 6월, 프라하에서 일어난 혁명운동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을 떠 국민 의용군 행진곡 등을 작곡하는 등 민족 운동으로서의 작곡가의 역할을 자각하게 된다. 그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과도한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인 면이 짙었으며, 보헤미안 민족 음악의 시조로 불린다.

한창 활동하던 1874년, 신경매독과 관련된 귓병으로 지휘자를 그만둔 스메타나는 그해 10월, 청력을 완전히 잃었음에도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타낸 교향시 을 작곡했다.

나의 조국 중 2부 블라타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1884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예술적인 사상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사람만이 완전한 인간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2023.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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